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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관련 이슈들/환경보호실천일기

환경보호와 생존의 욕구 사이에서

지난주 코로나 19가 국내 지역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언론매체에서 연일 코로나 19 특집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많이 불안하지는 않으셨나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고, 네이프리의 가족 또한 연일 위생과 건강을 신경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시청으로부터 확진자의 동선을 매일 문자로 전송받고 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전 지역 주민들이 평범하게 이용하던 장소들이었어요. 한 명의 확진자가 방문했던 장소와 그를 통해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 보니, 어느덧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력이 제게도 스멀스멀 번져오고 있더라고요. 다른 국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여겨지던 문제가 지난 주말 제 일상에 턱 하니 들이밀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 찌질한 부분에 대해 고백하고자 합니다. 찌질하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제 신념을 따르지 못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달간 블로그에 환경 관련 소재의 글을 업로드하면서, 저는 택배 사용을 가급적 줄이고, 가능하면 시장에 가서 비닐 포장되지 않은 식료품을 구매해야겠으며,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용 앞에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더군요. 네이프리의 가족 모두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는터라 마켓 방문을 삼가게 되었고, 손 세정제부터 각종 식료품 구매까지 모두 온라인상에서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집 앞에는 택배 상자가 가득했고요. 배송받은 휴대용 손소독제는 당연하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었습니다.

 

 

 

 

머릿속에 상반된 입장의 생각들이 치열하게 충돌했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나가서 집 앞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을 구태여 택배 주문해서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요새는 마스크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구태여 마스크를 끼고 나가서 장을 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러다 소상공업자들이 타격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코로나 19가 장기적으로 확산되면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닐까?'... 코로나 19 자체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생겨났는데(박쥐요리 판매가 이유이든, 실험실의 연구때문이든) 그 결과 더 많은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고, 결국 그 영향이 미래의 인간에게 되돌아오게 될 악순환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그 악순환의 반복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의지, 동시에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기로 태어나서

작가 한승태가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자기 자신과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 닭, 돼지, 개 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에세이이자 ‘맛있는’ 고기(닭, 돼지, 개)와 ‘힘...

www.aladin.co.kr

 

작년에 저는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승태 작가는 닭 농장, 개 농장, 소 농장, 돼지 농장, 고기잡이 배 등 근무환경이 매우 열약한 곳에서 노동을 했었고, 그 경험에 대해 다룬 '인간의 조건'과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가 집필한 두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생명이 아닌 자원으로 취급되는 동물들이 얼마나 비윤리적인 대우를 받는지, 또한 인간이 어디까지 열약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지, 또 열약한 환경에 던져진 한 인간이 어떻게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한승태 작가는 '고기로 태어나서'가 발매되고 '김하나의 측면돌파'나 '흉폭한 채식주의자들'과 같은 여러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을 했는데요, 인터뷰 내내 한승태 작가는 무언가에 대해 섣불리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을 극히 경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승태 작가는 동물복지란에 대한 의견도 말했었는데요, '동물복지란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동물복지란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냥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여 하루 끼니를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동물복지란을 살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한승태 작가는 동물 농장에서 직접 근무하며 동물들이 처한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이에 대해 폭로하는 책을 써낸 사람입니다. 그런 한승태 작가가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은,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와 같은 제 생각의 흐름이, 환경보호를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멈춘다거나 제 이번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번에는 한 보 후퇴했고, 앞으로도 후퇴할 일이 생길 테지만, 그렇다고 평생에 걸친 환경보호라는 경주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경험은, 환경보호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다른 개인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섣불리 비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의 흐름으로 이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명백히 나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을 때도 저는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 상황이 지속되도록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이 부패하고, 환경오염이 악화되는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끼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저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먼저 실천함으로써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 개개인이 옳지 못한 선택을 하도록 몰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것. 책임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