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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감상/영상물-팟캐스트

넷플릭스 비스타즈 : 내면의 그림자에 대해 고찰하다

네이프리는 최근 넷플릭스 구독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이상하게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증상이 있었어요. 곰곰이 살펴보니 제가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마음껏 못 가고, 영화관에 가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보는 것조차 편치 않은 지금 상황에 지쳐있더라고요. 게다가 지난주 초에는 <인간본성의 법칙>의 법칙을 읽으며 저의 과거, 내면, 인간관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정신을 피로하게 했었고요.

 

 

인간본성의 법칙 : 내가 예민해지는 순간

네이프리는 로버트 그린이 집필한 <인간본성의 법칙>을 이제 절반가량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 굉장히 두꺼운데다(거의 1,000페이지나 돼요!), 이 책을 읽다보면 제 개인의 심리상태에 대해 분석��

nafree.tistory.com

 

저는 결국 <넷플릭스> 한 달 이용료를 결제했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집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탐방해야죠. 어제는 하루 종일 넷플릭스로 <비스타즈>라는 애니메이션 1기를 쭉 봤습니다. 수려한 작화와 성우진의 훌륭한 연기도 좋았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가 정교히 묘사되어 있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었던 책 <인간본성의 법칙>에서 주장하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성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이나 <평상시 우리가 억압하는 내면의 그림자>에 대해 고찰할만한 지점이 참 많더라고요.

 

 

■ 비스타즈(Beastars) : 우리 내면의 그림자에 대하여

 

비스타즈 BEASTARS 등장인물 : 왼쪽부터 고힌 - 하루(히로인) - 잭 - 쥬노 - 레고시(주인공) - 루이

 

<인간 본성의 법칙>에 의하면, 내면의 그림자는 우리 안의 깊고 깊은 불안, 남에게 상처 주고 싶은 욕망, 복수에 대한 판타지, 사람들에 대한 의심, 더 많은 관심과 권력에 대한 갈증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평상시에는 멀쩡한 가면을 쓰며 이런 내면의 그림자를 꾹꾹 억압하면서 지내지만,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상황 속에선 내면의 그림자가 겉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비스타즈 1기는, 등장인물들이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자신들의 욕망을, 그리고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형성된 내면의 그림자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아주 심도 있게 보여줍니다. 

 

 

레고시

 

<비스타즈>의 주인공 <레고시>의 경우엔, 다분히 사색적이면서 동시에 순수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레고시가 지닌 내면의 그림자는 바로 <육식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것은 레고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레고시는 육식동물인 늑대로 태어났기 때문에, 육식에 대한 갈망은 유전적으로 새겨져 있는 거죠. 

 

 

레고시는 자기 자신의 본성(육식에 대한 갈망)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내면의 그림자를 어떻게 통제하고, 친사회적으로 관리할지에 대해 1기 내내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레고시는 우리 내면의 그림자를 관리하는 가장 긍정적인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루

 

반면 히로인인 <하루>는, 드워프 종 토끼로 태어나 신체적으로 남들보다 열등한 자기 자신에 대해 강력한 자격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루의 자격지심(내면의 그림자)은,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늘 도움만 받아야만 했던 성장과정과 연관이 깊습니다. '남들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을 위해 하루가 선택한 방법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자들과 섹스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자격지심,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남자들과 섹스파트너를 맺는 선택을 하는 것은 다분히 자기 파괴적이고 현명치 못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선택의 결과 극 초반부에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루이>와도 섹파 관계로 빠져 진정 어린 연인관계가 될 수 없었고요. (물론 이건 루이 자체가 매우 문제많은 성격^^;이라 그렇기도 하고요..)

 

 

신체적 열등함, 태어난 환경, 과거의 경험,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성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핑계 삼아 내 미래를 더 악화시키는 선택을 내릴 필요 또한 없을 것입니다.

 

 

루이: 직장상사가 이렇다면 퇴사가 답

 

연극부 회장이자 대기업의 후계자인 루이는 비스타즈에서 단연 가장 골 때리는 성격입니다<인간본성의 법칙> 저자 로버트 그린이 혹독하게 비판하는 모든 성격적 특성이 루이에게서 관찰됩니다.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캐릭터 같은데, 저는 '주변에 이런 인간이 있으면 얼마나 내 삶이 피곤할까...' 이런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혹시 이 포스팅을 읽으시는 분들 중 루이 같은 성격의 보유자가 자신의 남자친구거나 직장상사라면 헤어짐이나 퇴사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루이의 성격을 다음 네 가지 키워드로 묘사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힘>, <지나친 완벽주의>, <자신의 선택은 무엇이든 합리화>, <중요한 일은 나만 해낼 수 있다는 과잉적 자아 보유>.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의 감정은 신경쓰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에만 몰두하는 캐릭터입니다.

 

 

루이는 육식동물의 먹이로 팔려갈 뻔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엄청난 사명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요. 그 사명감을 실현하기 위해 매사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합니다. 그래서 루이의 주변사람들은 늘 긴장할 수밖에 없죠. 비스타즈가 이 부분 묘사를 참 잘했더라고요.

 

 

연극부 후배들은 루이를 동경할지는 모르겠으나, 동시에 루이를 굉장히 불편해합니다. 루이 앞에선 항상 긴장하고 주눅 들어있죠. 극 후반부에 <쥬노>가 사실상 연극부의 리더 역할을 했을 땐, 연극부 후배들이 다들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참 대조적입니다.

 

 

게다가 루이는 쥬노가 잘해내는 모습을 보며 은근히 견제까지 합니다. 극중에서는 이 부분을 '루이가 육식동물을 싫어해서'라고 표현하며 쥬노와의 섹슈얼 텐션이 넘치는 장면으로 넘겼지만, 저는 그 장면이 '루이 자신이 쥐고 있던 권력이 쥬노에게 넘어가는 것에 대한 질투'로 읽혔습니다.

 

쥬노

 

루이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선택은 무엇이든 합리화>한다는 점입니다. 루이는 사회문제 해결을 꾀하는 기업의 후계자로서, 약혼녀가 있으면서도 하루와의 비밀스러운 섹파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기업의 후계자로서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있으니까, 약혼녀를 무시한 채 섹파 관계쯤은 비밀스레 맺어도 아무 문제가 안된다는 건가요? 막대한 사회적 책임을 짊어진 자신이 범하는 사소한 도덕적 일탈쯤은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요?

 

 

자신의 선택은 무엇이든 합리화를 하는 루이의 모습은, 하루가 사자회에 납치당했을 때 구하러 가지 않는 부분에서 극대화됩니다. 그가 늘 외쳤던 <정의>, <도덕>, <책임>, <의무>와 같은 말이 공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말만 그럴듯했을 뿐, 실제로 그 말을 실천해야 하는 순간에는 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회 안정 유지> 같은 그럴듯한 변명을 내세워서요.

 

 

물론 루이가 사자회 보스를 죽인 후, 회사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극 후반부에 잠깐 묘사되긴 했습니다. 또 포스팅을 작성하다 보니 제가 유독 루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박하게 평가한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저는 최근 <인간 본성의 법칙>을 읽었기 때문인지,  <비스타즈>를 보면서 제가 직접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인간군상에 대해 생각하며 보게 되더라고요. 루이 같은 성격의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지니고 직장상사, 기관장, 정치인으로서 제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