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카포트를 사용하는 게 능숙하지 않아 커피를 내릴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조화인지 커피가 너무 맛있더라고요.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킬 때 처음으로 꽃향기라는 걸 느껴봤어요. 사실 1년 넘게 커피를 마셔오긴 했지만, 이 원두에서는 과일맛이 난다거나 혹은 꽃향기가 느껴진다거나 하는 전문가들의 표현을 이해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그 절묘한 맛을 경험한 거죠. 아, 이게 바로 커피에서 나는 꽃향기라는 거구나!
커피 한 잔으로 끝내긴 너무 아쉬웠고, 또 이 절묘한 맛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찬장에서 원두를 꺼내 모카포트에 담고 다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라? 커피가 추출되는 느낌이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아까 전엔 추출이 금방 끝난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한참이 지나도록 커피가 모카포트에서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처음엔 찬물을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렸는데, 이번에는 빨리 마시고 싶은 마음에 처음부터 뜨거운 물을 넣고 끓인 게 잘못이었던 걸까요? 그렇게 내린 커피는 꽃향기는커녕 원두 태운 맛만 가득했습니다.
즐거워야 했을 커피타임이 탄 맛 나는 커피로 끝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자는 생각에 드립 커피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세 번이나 내리는 중노동에 지쳤기 때문인지, 피곤하다는 생각에 처음처럼 맛을 음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커피를 이미 많이 마셨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고 배만 불렀을 뿐,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모카포트와 드리퍼를 설거지하면서, 문득 무엇이든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하루에 단 한 번. 느긋하게 정성 들여서 내린 단 한 잔의 커피만 마시려고 합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의 설렘과, 커피가 주는 그윽함을 하루를 버텨내는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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