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본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인 사사키 후미오 씨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할 법 한 고민들에 대해 요모조모 일갈을 날리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제 방 안에서 군더더기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오늘의 비움 타깃은 보드게임 '알함브라', 실리콘 필통, 플라스틱 케이스, 그리고 3개의 아이섀도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모두 다 1년이 넘게 사용하지 않았더라고요. 아이섀도는 주변에 나눠주었고, 나머지는 모두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였습니다.
네이프리가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지닌 건 작년 2019년 4월 경입니다. 이직을 하게 되어 마침 직장 근처에 있는 조부모님 댁에서 방 한 칸을 얻어 두 달가량 생활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꼴랑 두 달간 방 한 칸을 얻어 살았을 뿐이었는데, 두 달 후 짐을 빼서 나올 때 무려 짐이 여섯 박스가 나왔습니다. 커피머신이나 우유 거품기 같은 소형 가전제품은 또 어찌나 많이 샀던지요. 저라는 단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물건들로 인해 원할 때 자유로이 이동하지 못하는 경험은 몹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후 자연스레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물건들을 꾸준히 정리하고 버리고 중고로 판매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예전에 가지고 있던 물건의 3분의 1 수준으로 소지품을 줄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열광적으로 수집했던 물건은 바로 보드게임입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처분이 어려웠던 물품이기도 하고요. 우연한 계기로 '카탄'을 플레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빠져든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그리고 제 직무영역에서 보드게임을 활용해 볼 수 있었기에 더 열광하기도 했고요.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게임들을 수십 개가 넘게 구매했는데, 실상 제대로 플레이 해 본 게임은 몇 개 없습니다. 보드게임은 기본적으로 함께 할 사람을 필요로 하는 활동입니다. 하지만 네이프리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보드게임을 즐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동호회 활동을 나가자니 꾸준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노는 게 참 제 성향에 맞지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주제에 '나는 보드게임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잖아! 보드게임은 내 취미고 그건 내 정체성이야! 그러니까 계속 사야지!'라는 생각으로 게임을 계속 사들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보드게임 수십 박스가 캐비닛에서 공간만 차지하길 3년. 올해 저는 보드게임이 더 이상 제 취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알함브라'를 처분한 지금, 제 캐비닛 안에는 제가 가장 많이 했던 보드게임 딱 두 개만 남아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물건을 비웠을 뿐인데 일상에 변화가 찾아오긴 하더라고요. 일단 예전보다 집중력이 좋아졌습니다. 정신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제 주위에 없으니까요. 예전에 제 캐비닛 안에는 책이 수백 권이 꽂혀서 뒹굴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항상 '읽어야지... 읽어야지... ' 그래놓고 정작 읽은 책은 몇 권 되지 않았습니다. 미니멀 라이프 입문 후 종이책들을 모두 중고로 처분한 후 지금은 진짜 보고 싶은 책 딱 한두 권만 구매해서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있는데,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나 그 책 가지고 있는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제가 그 내용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물건을 비우는 과정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그릇된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고요. 과거의 제가 잔뜩 소유한 책을 통해 제가 그 모든 주제에 정통한 것처럼 굴고, 또 보드게임을 통해 '보드게임을 할 줄 아는 독특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어했던 것처럼요. 그러나 인간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과거의 특정 시점에서 사용했고 소유했던 물건들이 한 인간의 평생에 걸쳐 변화하는 정체성을 대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어요!) 보드게임은 한 때 제가 진심으로 즐겼던 활동입니다. 그러나 어느순간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보드게임을 잔뜩 소유하고 있을 땐 이 변화에 대해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가게에서 보드게임을 기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려 휴대용 장바구니, 휴대용 손수건, 아이디어 정리 노트, 스테인리스 s자 고리를 구매했습니다. 과거의 물건을 비우기가 무섭게 새로운 물건이 제 일상에 다시 들어왔네요. s자 고리는 주방에 수세미가 단정치 않게 널브러지는 것이 싫어서 정리하려고 구매했습니다. 공책은 일상에서 불현듯 블로그에 업로드할 글감들이 떠올랐을 때 정리하기 위해 구매했습니다. 휴대용 장바구니와 손수건은, 제가 생각보다 즉흥적으로 식재료를 사거나 화장실에서 물묻은 손을 닦은 후에 휴지를 뜯어 쓰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구매했습니다. 과거의 물건이 빠져나가며 제 마음과 공간에 여유가 생겼기에, 새로이 들어온 물건을 통해 현재 제 관심사가 변화한 것이 더 크게 느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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